정의
조선 전기에, 인순부윤, 전라도관찰사, 판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서 병조참의 · 형조참의를 거쳐 1437년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충주목사에 제수되고, 광주목사를 거쳐 1442년(세종 24) 한성부윤으로 진향사(進香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외직으로 나가 황해도관찰사 ·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하고, 1447년 형조참판이 되었다. 이듬해 48세로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올랐으나, 곧 뇌물수수 혐의로 탄핵을 받아 전라도 영광으로 유배되었다. 문종이 즉위하여 직첩과 고신(告身: 관직 임명장)을 환급해주었다.
지돈녕부사 · 한성부윤 · 개성유수를 거쳐, 문종이 죽자 고부 겸 청시사(告訃兼請諡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57년(세조 3) 대사헌을 거쳐 중추원사(中樞院事) · 인순부윤(仁順府尹) · 전라도관찰사를 거쳐 1460년 숭정대부(崇政大夫)에 올랐고,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에 제수되었다.
70년 동안 벼슬하면서 7조(七朝)를 보좌하였다. 천성이 온순하고 단아하여 일생 동안 성을 내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시호는 양평(良平)이다.
참고문헌
- 『세종실록(世宗實錄)』
- 『문종실록(文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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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본관 및 자 : 『성종실록』 188권, 1486년(성종 17) 2월 8일. "판돈녕부사 김세민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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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진향사로 명나라행 : 『세종실록』 98권, 1442년(세종 24) 11월 28일. "이맹진 김세민이 북경으로 가지고 가는 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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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시호 추증 : 『성종실록』 188권, 1486년(성종 17) 2월 8일. "판돈녕부사 김세민의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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