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사헌,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10년(광해군 2) 호분위부사직(虎賁衛副司直)으로 『선조실록(宣祖實錄)』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수찬(修撰)으로 유영경(柳永慶)을 탄핵하는 언론 활동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이어 장령(掌令) · 검상(檢詳) 등을 지낸 뒤 정주목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1619년 사은부사(謝恩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승지(承旨)가 되었으며, 인조반정 이후 우부승지 · 호조참의 등을 거쳐 대사간에 임명되었다.
곧 대사헌으로 전직되었다가 의정부에서 이조판서 이귀(李貴)와 서로 언쟁을 벌인 일이 화근이 되어 이후 계속 대립하였다. 그 뒤 도승지 · 이조참판 · 대사간 · 사헌 등을 번갈아 역임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인조와 신하들이 남한산성에서 청나라 군사에 의해 포위되어 항복을 강요당할 때 이에 반대하고 끝까지 싸울 것을 주장하였다.
최명길(崔鳴吉) 등 주화파의 주장으로 화의 국서가 작성될 때도 척화를 끝까지 내세웠으며, 인조와 조신들이 모두 항복할 때도 연로하다는 이유로 호종하지 않아 척화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
1644년 예조참판으로 재직 중 나이가 80세라고 해 자헌대부(資憲大夫)에 가자(加資)되고 우참찬에 올랐다. 시호는 정헌(靖憲)이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전고대방(典故大方)』
- 『대동야승(大東野乘)』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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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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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선조실록 편찬 : 『선조실록』 1권, 편수관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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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대사간 임명 : 『인조실록』 26권, 1632년(인조 10) 4월 10일. "김수현을 대사간으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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