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국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제학, 대사성,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경징(景徵)
동촌(東村)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77년(선조 10)
사망 연도
1655년(효종 6)
본관
청풍(淸風)
주요 관직
대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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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제학, 대사성,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경징(景徵), 호는 동촌(東村). 김여명(金汝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 김사원(金士元)이고, 아버지는 현감 김급(金汲)이며, 어머니는 임보신(任輔臣)의 딸이다. 김낙(金洛)에게 입양되었다. 호조판서 김신국(金藎國)의 아우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1년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생원이 주1, 1613년(광해군 5)에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홍문관에 들어갔으며, 1615년에는 주서(注書)에 올랐다. 1618년에 병조좌랑이 되었다. 그 뒤 직강(直講) · 수찬(修撰) · 부교리(副校理) · 이조좌랑 · 정언(正言)을 지냈다.

1621년 전라도선유어사(全羅道宣諭御史)가 되었으나 근무가 태만하고 직무에 실책이 많다는 대간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 1625년에 우부승지에 오르고 호조판서를 지냈으며, 이듬해 우승지 · 참찬관에 올랐다.

1630년(인조 8)에는 도승지로 승진하였으며, 1632년 동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40년에 대사성이 되고 이어 참판 · 대사간을 지냈으며, 1646년 제학(提學)에 올랐다.

그 뒤 대사성이 되었고 1649년(효종 즉위년) 판의금부사를 지낸 뒤 벼슬에서 물러났다. 형의 후광으로 정계에 진출하였으나 큰 공적을 남기지는 못하였다.

참고문헌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인조실록(仁祖實錄)』
『효종실록(孝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전고대방(典故大方)』
주석
주1

사마시 급제 : 『만력29년신축사마방목(萬曆二十九年辛丑司馬榜目)』(한국국학진흥원[안동 풍산김씨 허백당(虛白堂[金楊震]) 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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