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스승 조헌과 함께 의병을 일으킨 학자.
이칭
평숙(平叔)
오자옹(五者翁)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8년(선조 1)
사망 연도
1643년(인조 21)
본관
개성
출생지
옥천(沃川)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스승 조헌과 함께 의병을 일으킨 학자.
개설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평숙(平叔), 호는 오자옹(五者翁). 옥천 출신. 조헌(趙憲)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선조 25) 탄핵을 받아 안읍(安邑)에 우거하고 있던 조헌(趙憲)으로부터 학문을 배우며 지성으로 모셨다.

같은 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의 아들 조완기(趙完基)와 함께 조헌을 받들어 의병을 일으켰다. 1592년 8월 금산 전투에서는 조헌의 명으로 외지에 다녀오느라 죽음을 면하였고, 이후 조헌을 종신토록 애모(哀慕)하였다고 한다.

그 뒤 조헌을 모신 서원에 북인 세력가의 인척들이 그들의 조상인 전팽령(全彭齡)과 곽시(郭詩) 등을 함께 배향하자, 19년 동안이나 정부와 해당관서를 찾아다니면서 이의 시정을 요구, 관철시키기도 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김장생(金長生)의 막하에 들어갔고, 분조(分朝: 비상시에 국가의 조정을 임시로 나눔)에 나아가서 재상들에게 척화를 주장하였다. 만년에는 깊은 계곡에 정자를 짓고, 종일토록 『중용(中庸)』을 읽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전고대방(典故大方)』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