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평숙(平叔), 호는 오자옹(五者翁). 옥천 출신. 조헌(趙憲)의 문인이다.
1592년(선조 25) 탄핵을 받아 안읍(安邑)에 우거하고 있던 조헌(趙憲)으로부터 학문을 배우며 지성으로 모셨다.
같은 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의 아들 조완기(趙完基)와 함께 조헌을 받들어 의병을 일으켰다. 1592년 8월 금산 전투에서는 조헌의 명으로 외지에 다녀오느라 죽음을 면하였고, 이후 조헌을 종신토록 애모(哀慕)하였다고 한다.
그 뒤 조헌을 모신 서원에 북인 세력가의 인척들이 그들의 조상인 전팽령(全彭齡)과 곽시(郭詩) 등을 함께 배향하자, 19년 동안이나 정부와 해당관서를 찾아다니면서 이의 시정을 요구, 관철시키기도 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김장생(金長生)의 막하에 들어갔고, 분조(分朝: 비상시에 국가의 조정을 임시로 나눔)에 나아가서 재상들에게 척화를 주장하였다. 만년에는 깊은 계곡에 정자를 짓고, 종일토록 『중용(中庸)』을 읽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