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평장사를 지낸 김태서(金台瑞)이다. 권신 최이(崔怡)의 사위로서, 1225년(고종 12)에 내전을 수리할 때 그 집을 임시거처로 사용할 만큼 고종의 사랑을 받았다.
1235년에 딸이 원종의 비가 되자, 여러 번 자리를 옮겨 추밀부사가 되었다. 그러나최우의 부 중에 있는 여성들과 망월루(望月樓) 모란방(牧丹房)에서 음란한 짓을 저질렀다. 이 때문에 그의 아내가 최이에게 하소연하여 망월루, 모란방을 허물고, 사통한 여성들을 유배보내도록 하였다.
처도 종과 간통한 사실이 있었는데 이 사실이 탄로 날까 두려워한 처의 무고로 최우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나, 뒤에 사실이 밝혀져 장익공(莊翼公)에 추시되었다. 1219년(고종 6) 최충헌이 병이 나자, 아들 최이를 불러 자기에게 오지 말라고 한 후에, 김약선에게 병간호를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