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직제학, 이조참의,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54년(영조 30)에 세자익위사세마(世子翊衛司洗馬), 이듬 해 부수(副率)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며, 1758년에는 학행으로 천거되어 사간원정언에 임명되었으나 역시 부임하지 않았다.
그 뒤 시강원자의(侍講院諮議) · 사옹원주부 · 사헌부지평 · 장령 · 집의 · 성균관사업(成均館司業) · 호조참의 · 예조참의 · 경연관 · 공조참의에 임용되었으나, 상소하여 사직했다. 그 뒤 직제학을 거쳐 이조참의에 이르렀으며, 정조 때 형조참판을 지냈다.
이우신(李友信) · 민치복(閔致福) · 박준원(朴準源) 등의 많은 학자들이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저서로는 『지암문집(止菴文集)』 9권이 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지암문집(止菴文集)』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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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시호 추증 : 『순조실록』 7권, 1805년(순조 5) 1월 7일. "20인의 시망에 대해 하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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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김양행 저술 : 『지암문집(止菴文集)』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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