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림 라장조, 8분의 6박자, 16마디로 된 두 도막 주1으로, "힘차게 또는 열정적으로"라는 지시어가 붙어 있다. 왼손으로만 연주하는 2마디로 된 펼친 화음의 전주에 이어 주2의 구성음만으로 선율을 만든 첫마디가 힘차게 전개되고 열정적인 선율이 그 뒤를 따른다. 중간중간 감정 변화에 따른 박자의 변화가 있다. 마지막 마디의 첫 음을 클라이맥스하여 강하게 노래를 끝내고 있다.
북간도(北間島)주3 주4을 배경으로 만든 노래이다. 작곡자의 증언에 따르면 "이 노래는 이국에서의 우리 주5들의 활동상을 그린 것이다. 일제의 침략은 많은 주6를 만주(滿洲)로 주7 했으며 그곳에서 이들은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주8로서 선구자의 역할을 하여 왔다. 이들 선열들의 당시의 주9 거사를 찬양하여 후세에 전하려고 하는 것이 이 작품의 의도"라고 한다. 가사는 모두 3절로 되어 있는데, 2절에 나오는 "활을 쏘던 선구자"와 3절에 나오는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는 원 가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곡자가 바꾼 것이다.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작곡자가 광복 후 대한민국으로 이주를 하면서 이 노래를 알렸다. 특히 1963년 12월 30일, 서울 시민 회관에서 열린 송년 주10에서 주11 김학근(金學根)의 독창(獨唱)으로 부른 것을 기독교 방송국에서 녹음하여 「정든 우리 가곡」이라는 프로그램의 시그널 주12으로 7년 동안 사용함으로써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오랫동안 ‘애국 가곡’ 또는 ‘민족 가곡’으로 애창되었고, 또 음악 교과서에 수록되어 '국민 가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렇지만 작곡 및 발표 시점이 1933년이 아니라 1944년이라는 주장과 작사자인 윤해영이 독립투사가 아니라 주13에 협조한 친일파 문인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이 곡의 정체성을 둘러싼 많은 논란이 불거졌다. 그 후에도 계속하여 ‘민족의 노래’냐 ‘친일의 노래’냐 하는 논란이 있었는데, 그 논란과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작곡자 제2의 고향이기도 한 마산(현, 경상남도 창원시)에는 이 노래의 노래비가 있고, 또 창원 마산 음악관에는 이 노래에 등장하는 ‘일송정’과 ‘용두레 우물’을 재현한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