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말기의 의병과 대한민국 임시정부하의 광복군, 하와이에서 조직된 국민군이 부르던 곡들과 민족청년군가, 학도군가 등을 포함한다.
1907년 우리나라 군대가 일본에 의하여 강제해산되자 주1와 창의구국(倡義救國)의 깃발로 일어선 의병들이 부른 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의 가락에 맞추어 부른 「의병창의가(義兵倡義歌)」와 「의병격중가(義兵激衆歌)」가 그 효시이며, 이 무렵에 돌격대의 뜻을 지닌 「혈성대가(血誠隊歌)」도 불렸다.
1910년 국권 상실 후에는 항일 주2이 더욱 격해지면서 독립군가의 수도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잘 알려진 「용진가」와 「독립군가」가 나오고, 「신흥무관학교 교가」와 「영웅의 모범」 등의 노래가 불렸다. 1914년에 미국 하와이에서 국민군 군영 주3 때 부른 「국민군가」는 외국의 행진곡조에 맞추어 당시 국민군 단장인 박용만(朴容萬)이 가사를 지었다.
3·1운동 무렵에는 주5가 지정한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항일전선가」 · 「우국지사의 노래」 · 「독립지사의 노래」 · 「독립군은 거름」 · 「최후의 결전」 등 많은 독립군가가 등장하여 주로 중국과 러시아, 하와이 등 해외 독립 투쟁 등의 현장에서 불렸다.
1936년 이후 대부분의 독립군이 해산되고 주4이 이를 대신하게 되자, 독립군가의 대부분이 광복군가로 이름이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 이 무렵부터 광복까지는 「광복군 행진곡」 · 「광복군 항일공작대가」 · 「광복군 항일전투가」 · 「광야를 달리는 독립군」 · 「압록강 행진곡」 등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군가가 있었다.
최초의 독립군가가 나온 이후 해가 거듭될수록 곡과 내용이 다양해지고 그 수도 늘어났으며, 특히 1910년에서 1920년 전후에는 가장 많은 수의 독립군가가 나타났다. 독립과 광복 쟁취를 위한 항일 투쟁 정신과 애국심의 고취, 그리고 독립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1943년에는 한국광복군 제2대 선전 위원회에서 『광복군가집』을 편찬하였는데, 여기에는 「국기가」, 「광복군 2지대가」, 「광복군가」, 「압록강행진곡」 등 16편의 광복군가가 수록되어 있으며, 2011년 8월 24일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노랫말은 지은이를 알 수 없는 것과 안창호(安昌浩) · 이청천(李靑天) · 김좌진(金佐鎭) · 이범석(李範奭) · 박용만 등 독립 투사들이 지은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곡의 선율은 새로 작곡된 것들과 기존의 전통 민요와 중국 곡, 러시아 군가, 서양의 노래와 행진곡 그리고 찬송가 또는 주6에서 차용하여 온 것들로 나눌 수 있다.
작곡은 이범석, 한유한 등에 의하여 이루어지기도 하였고, 이상준(李尙俊) 등의 곡들을 빌려 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빌려 온 곡 가운데는 러일전쟁 무렵의 일본 해군군가인 「군함행진곡」과 「일본해군」 등 일본의 군가도 적지 않게 있어 음악적으로 혼란함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4분의 2박자나 4분의 4박자의 행진곡조의 노래가 많으며, 음의 영역은 넓지 않았으며, 간단한 리듬에 곡의 길이도 짧아 외워서 노래하기가 쉬웠다. 선율 기교도 단순하였고, 많은 곡들이 서양 음악의 평균율 음계를 따른 것이었다. 지금은 많이 불리지 않고 있으나 현재 우리나라 군가의 모체 구실을 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