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남 ()

조두남
조두남
현대음악
인물
가곡 「선구자」 · 「옛이야기」, 오레레타 「에밀레종」 등을 만든 작곡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2년 10월 9일
사망 연도
1984년 11월 8일
출생지
평안남도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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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가곡 「선구자」 · 「옛이야기」, 오레레타 「에밀레종」 등을 만든 작곡가.
생애 및 활동사항

1912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했다. 평양 종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6세 때 미국인 신부 캐논스(Cannons, J.)에게 작곡을 배운 뒤, 11세 되던 해인 1923년 가곡 「옛이야기」를 작곡했다.

1928년 전후로 평양 산정현 잘로교회, 중앙교회, 남문외교회, 연화동교회, 명천교회, 기양교회 등 교회에서 개최하는 부흥회에서 오르간과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찬송가 지도자로 지냈다. 그 뒤 일제의 탄압으로 국내활동이 여의치 않자 만주로 가 그곳에서 청년기의 작품 활동을 했다.

1943년 3월 만주국 『예문지도요강』의 취지에 따라 일본 중심의 국민음악 창조를 목적으로 조직된 만주작곡가협회에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했다. 또한 1943년부터 징병제를 찬양하고 낙토만주와 오족협화로서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자는 내용의 군가풍 국민가요를 작사 · 작곡해 보급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서울에서 창작활동을 하다가, 6·25전쟁으로 마산에 피난하여 그곳에 정착하였다. 마산에 정착한 후 작품 활동보다는 피아노 교육에 힘써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1962년부터 1968년까지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마산시지부 초대 지부장을 역임했고, 이어 경상남도문화상 심사위원, 한국음악협회 고문, 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마산시지부 고문을 역임하면서 향토문화 발전과 예술진흥에 많은 공헌을 했다.

대표작으로는 가곡 ‘선구자’ · ‘옛이야기’ · ‘그리움’ · ‘제비’ · ‘접동새’ 등과 교성곡 ‘농촌’, 오페레타 ‘에밀레종’, 피아노곡 ‘환상무곡’ 등이 있다. 작품 경향은 형식면에서는 고전주의, 내용면에서는 낭만주의, 정서면에서는 민족주의이다.

청년기에는 주로 우국(憂國)의 정을 담은 서정적인 노래들을 많이 작곡했고, 장년기에는 민족 고유의 장단과 가락이 어우러진 풍류의 멋이 깃든 민족주의 노래들을 많이 작곡했다.

작곡집으로는 가곡집 『옛이야기』(1949) · 『분수』 (1962) · 『산도화』(1970) 등과 피아노작품집 『환상무곡』(1963) 등이 있고, 음반으로는 『조두남가곡집』(1973) · 『조두남가곡선집』(1979) 등이 있다. 저서로는 수상집 『선구자』(1975)와 『그리움』(1982)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경상남도문화상, 1976년 눌원문화상, 1981년 MBC 창사 20주년 기념 가곡공로상 등을 받았다.

참고문헌

『친일인명사전』3, (민족문제연구소, 2009)
『한국가곡사』(김점덕, 과학사, 1989)
『그리움』(조두남, 세광출판사, 1979)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성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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