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증조부는 평장사를 지낸 양신공(良愼公) 김의진(金義珍)이며, 평장사 김인경(金仁鏡)의 아버지이다.
일찍이 흥교도관역사(興郊道館驛使)가 되어 선정을 베풀어 민심을 크게 얻었다. 1173년(명종 3)에 구주에서 재임 중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 김보당(金甫當)의 난이 실패하자 이에 연루되어 영주(寧州) 옥에서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흥교의 이민(吏民)들이 처치사(處置使)에게 애원하여 처형을 면하였다.
서울로 압송된 뒤, 친분이 있던 승선 이준의(李俊儀)의 도움으로 풀려났으며, 그 뒤에 벼슬이 합문지후(閤門祗候)에까지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