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고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흥교도관역사, 합문지후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경주(慶州)
주요 관직
흥교도관역사|합문지후
관련 사건
김보당의 난
정의
고려 후기에, 흥교도관역사, 합문지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증조부는 평장사를 지낸 양신공(良愼公) 김의진(金義珍)이며, 평장사 김인경(金仁鏡)의 아버지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흥교도관역사(興郊道館驛使)가 되어 선정을 베풀어 민심을 크게 얻었다. 1173년(명종 3)에 구주에서 재임 중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 김보당(金甫當)의 난이 실패하자 이에 연루되어 영주(寧州) 옥에서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흥교의 이민(吏民)들이 처치사(處置使)에게 애원하여 처형을 면하였다.

서울로 압송된 뒤, 친분이 있던 승선 이준의(李俊儀)의 도움으로 풀려났으며, 그 뒤에 벼슬이 합문지후(閤門祗候)에까지 이르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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