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탁오실(濯悟室). 경기도 강화 출신. 한성육군무관학교(漢城陸軍武官學校)에 입학하여 무관이 되려고 하였으나, 을사조약으로 폐교되자 강화 사립 보창학교(普昌學校) 사범과에 입학하였다.
그 뒤 연안의 사립 봉남학교(鳳南學校)에 재직 중 기독교에 입교하게 되었다.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유학한 뒤 인천지방에서 전도사로 잠시 활동하다가, 다시 일본에 건너가 동경의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에서 신학공부를 하였다.
귀국하여 인천내리교회의 부목사로 일하면서 북경의 감리교 동아총회, 미국 아이오와주의 미국감리교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1921년부터 1923년까지 미국 동부의 하트포드(Hartford)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미국감리교 뉴욕 동부연회의 감독 니콜슨 (Nicolson,B.)에게서 목사안수를 받고, 뉴욕한인감리교회의 담임목사로 시무했다. 귀국 후 서울 중앙감리교회·정동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였다.
이승만(李承晩)의 독립운동자금을 둘러싼 흥업구락부사건(興業俱樂部事件)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광복 후 잠시 하와이주재 총영사를 지내다가 다시 서울 중앙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