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출신. 1917년에 협성신학교를 졸업한 뒤, 1918년 미감리교연회(美監理敎年會)가 시베리아 선교 재개를 결정함에 따라 지역선교 책임자로 파송되었다.
만주의 장춘(長春)을 중심으로 간도(間島) 전역을 순회시찰하면서 선교전략을 세우는 한편, 독립운동에도 적극 가담하였다. 김영학·유찬희·박경철 등과 함께 간도지방의 한족독립기성회 의사부원(議事部員)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에는 간도를 대표하여 파리 파견 대표자에게 통신할 임무를 맡은 연락책임자로도 일하였다. 1920년에는 강서지방(江西地方)에서 목회하다가 이듬해 만주 선교사로 파송되어 동료인 정재덕(鄭在德)·최수영(崔壽永) 등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를 위시하여 시베리아일대에 많은 교회를 설립하였다.
그 뒤 만주의 하얼빈·용정 지역에서 선교를 겸한 교포교화사업과 민족의식 고취에 헌신하였다. 1931년 조선감리교회 만주지방선교회의 조직에 참여하였고, 초대만주지방 감리사를 역임하였다. 1939년 20여년에 걸친 만주 선교 사업에서 은퇴하여 귀국, 1950년 뒤에는 서울 수색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