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성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재미한족연합회 집행부위원, 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부 외교위원장 등을 역임한 의사 ·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7년(고종 34)
사망 연도
1962년
출생지
평안남도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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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재미한족연합회 집행부위원, 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부 외교위원장 등을 역임한 의사 ·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평안남도 평양 출신. 1900년대 중반 미국으로 이민하여, 1909년 박용만이 네브라스카주 헤이스팅스시에 설립한 한인소년병학교에 입학하여 1911년 제1회로 졸업하였다. 1928년 하버드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시험에 합격해 로스엔젤리스에서 병원을 열었다.

1941년 4월 하와이 호놀룰루 밀러스트리트에서 개회한 해외한족대회(海外韓族大會)의 결의안에 따라 설립된 재미한족연합회의 집행부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재미한족연합회의 집행부가 미 육군사령부의 허가를 얻어 1941년 12월 로스앤젤레스에 한인국방경위대인 맹호군을 편성하자, 1942년 동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43년 12월 『뉴 코리아(The New Korea)』에 「한국은 다시 자유를 찾고 독립될 것이다」·「적절한 절차는 미국에의 도전」 등의 글을 기고하여, 한인들이 일본을 패망시키기 위한 미·영·중의 활동을 도울 것임을 천명하였으며, 1944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부 외교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광복 후인 1948년 1월에는 북미 대한인국민회의 총무로 재미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헌신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8년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독립유공자공훈록』(국가보훈처, 2000)
『재미한인50년사』(김원용, 1959)
집필자
조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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