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문한관, 공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오성(筽城). 자는 지임(之任), 호는 용만(龍灣). 아버지는 김효검(金孝儉)이다.
생애 및 할동사항
1572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공조좌랑에 올랐으나 어떤 일에 연루되어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뒤 세상의 일을 잊고 독서에만 열중하여 당송팔대가의 문집이나 중국의 역대사서를 섭렵하였다.
임진왜란의 와중에서도 면학에만 힘써 저서 30여권이 있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적병이 쳐들어와 어머니가 적에게 잡히자 어머니를 구하려다 함께 피살되었다. 생전에 노(奴) 정세(正世)가 영광에 거주하면서 강상(綱常)의 죄를 범하였으나 이를 비호하여 해당 지방관 · 향소(鄕所) · 색리(色吏) 등이 모두 처벌받았고 자신도 탄핵받았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주석
-
주1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2
: 탄핵상소 내용 : 『선조실록』 89권, 15978년(선조 30) 6월 11일. "사노가 그 어미를 죽인 변고가 일어나다"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