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오성(筽城). 자는 지임(之任), 호는 용만(龍灣). 아버지는 김효검(金孝儉)이다.
1572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공조좌랑에 올랐으나 어떤 일에 연루되어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뒤 세상의 일을 잊고 독서에만 열중하여 당송팔대가의 문집이나 중국의 역대사서를 섭렵하였다.
임진왜란의 와중에서도 면학에만 힘써 저서 30여권이 있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적병이 쳐들어와 어머니가 적에게 잡히자 어머니를 구하려다 함께 피살되었다. 생전에 노(奴) 정세(正世)가 영광에 거주하면서 강상(綱常)의 죄를 범하였으나 이를 비호하여 해당 지방관·향소(鄕所)·색리(色吏) 등이 모두 처벌받았고 자신도 탄핵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