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위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담양부사, 형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여기(汝器)
만취(晩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32년(중종 27)
사망 연도
1595년(선조 28)
본관
경주(慶州)
출생지
남원
주요 관직
형조참의
정의
조선 중기에, 담양부사, 형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기(汝器), 호는 만취(晩翠). 남원 출신. 할아버지는 김귀손(金龜孫)이며, 아버지는 김사걸(金士傑)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이이(李珥)와 교유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58년(명종 1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571년(선조 4) 담양부사가 되었으며, 그 뒤 내외의 여러 관직을 거쳐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과 형조참의를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든 몸으로 어가를 호종하였다. 말년에는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여 독서로 여생을 보냈으며, 뒤에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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