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수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 조선 전기
조선전기 지중추부사, 충청도처치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시호호양(胡襄)
인물/전통 인물
  • 본관선산(善山)
  • 사망 연도1462년(세조 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지중추부사|충청도처치사
  • 출생 연도1387년(우왕 1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현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전기 지중추부사, 충청도처치사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선산(善山). 세종 초에 무과에 급제하여 경력(經歷)을 역임하고, 1427년(세종 9) 세자시종관이 되었다. 1435년에 여연군수가 되어 야인 2천 7백여 명이 성을 포위하자 도진무(都鎭撫) 이진(李震) 등과 잘 싸워 이를 격퇴하였다.

그 해 5월 여연 경내에 침입한 야인이 인마(人馬)를 약탈, 도주한 사실을 몰랐다는 이유로 논란되었으나, 훌륭한 장수이며 변방을 지키는 장수를 자주 교체할 수 없다 하여 무사하였다.

1436년 야인 500여 명이 조명우구자(趙明于口子)에 침입, 남녀 14명을 납치하고 우마(牛馬) 85두를 약탈당한 책임으로 파직당하였으나, 곧 기용되어 김종서(金宗瑞) 휘하에서 경원·종성 등지의 축성역(築城役)을 책임맡았다. 1438년에는 회령의 방어를 책임맡고 이듬해 길주목사에 임명되었다.

1442년 회령절제사, 이듬해 경원절제사를 거쳐 1445년 중추원부사가 되었고 이어서 경상우도안무처치사(慶尙右道安撫處置使) 등을 역임하였다. 1447년 함길도도절제사가 된 뒤에 1450년(문종 즉위년) 동지중추원사를 거쳐 다시 함길도도절제사가 되어 북변(北邊)의 방어를 책임맡았다.

1451년 경기조전절제사(京畿助戰節制使)로 마보병(馬步兵) 3,400여 명을 거느리고 개성부에 주둔하였으며, 이어서 경상우도도절제사가 되었다. 1453년(단종 1) 지중추부사가 되었으며 하정 겸 사은사(賀正兼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이듬해 충청도처치사가 되었다. 1455년(세조 1)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시호는 호양(胡襄)이다.

참고문헌

  • - 『태조실록(太祖實錄)』

  • - 『태종실록(太宗實錄)』

  • - 『문종실록(文宗實錄)』

  • - 『단종실록(端宗實錄)』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해동잡록(海東雜錄)』

  • -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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