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행(金義行)의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삼류재(三留齋)이다. 아버지는 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를 지낸 시한재(是閒齋) 김순간(金順侃)이며, 동생은 규장각 서리 용재(庸齋) 김의현(金義鉉)이다. 본인은 교서관 서리를 지냈다. 아버지 김순간의 전처는 달성서씨이고 후처는 밀양박씨인데, 김의행은 전처 소생이고 김의현은 후처 소생이다. 김의행의 고조할아버지는 김수헐(金守歇), 증조할아버지는 김두성(金斗星), 할아버지는 김시주(金時柱)이다. 아버지 김순간은 유재건(劉在建)의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 소개되어 있다.
경아전 출신으로, 영 · 정조대에 여항시인으로 활동하였다. 범경문(范慶文)과 같은 여항시인과 교류하였으며, 18세기 후반 경아전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구로회(九老會) 시사(詩社) 활동에 아버지 김순간을 따라 참여하였다.
김순간은 비변사 서리 최윤창(崔潤昌), 승문원(承文院) 서리 마성린(馬聖麟), 이효원 등으로 구성된 구로회 회원들과 친밀하게 지냈으며, 자신의 집 시한재로 이들을 초청해 시회(詩會)를 개최하였다. 이때 금객 이휘선, 가객 김시경, 화원 윤숙관이 함께 참여하여 이날의 모임을 그림으로 남긴 바 있다. 이러한 인연으로 김의행 형제는 구로회 회원들 또는 그의 자제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되었다.
저술로 『삼류재유고(三留齋遺稿)』 1책이 전하는데, 서 · 발문이 없는 필사본 형태로 현재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231수의 시와 산문 약간 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시회 활동과 관련한 창작이 많이 보인다. 아버지 김순간은 구로회 회원들과 모암(帽巖)에서 시회를 열고 그림으로 남겼고, 김의행은 이 그림에 발문을 쓴 바 있는데 문집에 수록된 「근지청유첩후(謹識淸遊帖後)」가 이 글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