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재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상호군, 공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강우(江右)
  • 공후(公厚)
  • 시호문간(文簡)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동(安東)
  • 사망 연도1847년(헌종 1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이조판서
  • 출생 연도1767년(영조 4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정자 (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상호군, 공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공후(公厚), 호는 강우(江右). 할아버지는 대사간 김시찬(金時粲)이고, 아버지는 김방행(金方行)이며, 어머니는 심황(沈鐄)의 딸이다. 형이 우의정 김이교(金履喬)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89년(정조 13) 진사가 되고, 1790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초계문신(抄啓文臣: 37세 이하에서 우수한 자를 뽑아 규장각에 소속시키고 공부하게 한 문신)에 발탁되고, 검열(檢閱)·지평(持平)을 거쳤다. 1799년 수찬(修撰)으로 있을 때 시파(時派)로서 벽파(僻派) 죄인이던 정처(鄭妻)의 석방 명령을 거두어줄 것을 네 번이나 상계(上啓: 왕에게 일정한 형식을 갖춘 글을 올림)하였다.

이듬해 이조판서 이만수(李晩秀)의 사직 상소가 마땅치 않다는 소를 올려 언양현(彦陽縣)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고금도(古今島)에 안치되었다. 1805년에 풀려나 대사간·이조참의·경상도관찰사·대사성·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개성부유수로 있을 때 풍덕부(豊德府)를 개성에 통합시켜 땅의 경계를 확장, 정비하고 『중경지(中京誌)』를 편찬하였다. 이어 행호군(行護軍)·대사헌·공조판서·형조판서·한성부판윤·좌참찬·예조판서·이조판서까지 이른 뒤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그 뒤에도 계속 좌부빈객(左副賓客)·대사헌·형조판서·예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839년(헌종 5)에 시파와 벽파간의 논쟁으로 경기도 변방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와 다시 상호군·공조판서·이조판서를 지냈다.

당시 시파로 역량있는 중신이었으나, 시파와 벽파간의 싸움으로 벼슬길이 평탄하지 못했다. 판서로 있을 때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비롯한 법전에 실린 금고조(禁錮條)를 산개(刪改: 쓸데없는 문장이나 글을 없애거나 고침), 이혁(釐革: 바로잡아 새롭게 함)해 백성의 신원안(伸寃案)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편서로는 『중경지(中京誌)』가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헌종실록(憲宗實錄)』

  • - 『고종실록(高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기년편고(紀年便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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