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해주 출생.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아버지는 백범 김구(金九)이며, 동생은 김신(金信)이다. 1920년 할머니 곽낙원(郭樂園)을 따라 상해로 망명하여 아버지를 도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35년 11월에 이동녕(李東寧)·이시영(李始榮)·김구 등이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애국단을 중심으로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을 조직할 때 실무진으로 참여하였다. 1936년에는 한국독립군 특무대예비훈련소의 감독관으로 나가 군사훈련에 전념하였다.
1937년에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의 조직에 참여하고 다시 상해로 들어가 한국국민당청년단 상해지구 기관지 『전고(戰鼓)』를 발간하면서 독립사상 고취와 전쟁의욕을 촉진시켰다.
1938년 5월 창사[長沙]에서 주석 김구의 명령에 따라 상해에 재차 잠입하여 당(黨) 재건을 기도함과 동시에 일본의 중요관공서를 폭파할 것과 일본의 현관(顯官)들을 총살할 계획을 지휘 감독하였다.
또한 일본전투군함 이즈모[出雲]를 폭파, 격침할 만반의 준비를 진행하다가 사전에 정보가 누설되어 실패하였다. 1939년 10월 광시성[廣西省] 류저우[柳州]에서 한국광복전선 청년공작대에 입대하였다.
1940년 충칭[重慶]에서 한국국민당청년단의 기관지 『청년호성(靑年呼聲)』을 발간,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