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한국국민당 조직에 참여하였고, 한국국민당청년단의 기관지 『전고』, 『청년호성』 등을 발간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7년
사망 연도
1945년
본관
안동(安東)
출생지
황해도 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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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한국국민당 조직에 참여하였고, 한국국민당청년단의 기관지 『전고』, 『청년호성』 등을 발간한 독립운동가.
개설

황해도 해주 출생.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아버지는 백범 김구(金九)이며, 동생은 김신(金信)이다. 1920년 할머니 곽낙원(郭樂園)을 따라 상해로 망명하여 아버지를 도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35년 11월에 이동녕(李東寧)·이시영(李始榮)·김구 등이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애국단을 중심으로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을 조직할 때 실무진으로 참여하였다. 1936년에는 한국독립군 특무대예비훈련소의 감독관으로 나가 군사훈련에 전념하였다.

1937년에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의 조직에 참여하고 다시 상해로 들어가 한국국민당청년단 상해지구 기관지 『전고(戰鼓)』를 발간하면서 독립사상 고취와 전쟁의욕을 촉진시켰다.

1938년 5월 창사[長沙]에서 주석 김구의 명령에 따라 상해에 재차 잠입하여 당(黨) 재건을 기도함과 동시에 일본의 중요관공서를 폭파할 것과 일본의 현관(顯官)들을 총살할 계획을 지휘 감독하였다.

또한 일본전투군함 이즈모[出雲]를 폭파, 격침할 만반의 준비를 진행하다가 사전에 정보가 누설되어 실패하였다. 1939년 10월 광시성[廣西省] 류저우[柳州]에서 한국광복전선 청년공작대에 입대하였다.

1940년 충칭[重慶]에서 한국국민당청년단의 기관지 『청년호성(靑年呼聲)』을 발간,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백범일지(白凡日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朝鮮獨立運動』 Ⅱ(金正明 編, 原書房, 1967)
집필자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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