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전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국무원 학무차장, 임시의정원 전원위원장, 의장, 대한적십자회 상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6년(고종 13)
사망 연도
1923년
출생지
충청남도 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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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국무원 학무차장, 임시의정원 전원위원장, 의장, 대한적십자회 상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충청남도 서천 출생. 1920년 2월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에 피선되었으며, 특히 재무예산위원으로 재정문제 타결에 솜씨를 보였다. 그 해 4월에는 임시의정원 정무조사특별위원(군사)으로도 활약하였고, 동시에 임시의정원의 부의장을 지내다가 1921년 5월에 사퇴하였다. 1921년 8월에는 임시정부 국무원(國務院) 학무차장과 이어 학무총장대리로 활약하였다.

그 뒤 다시 임시의정원 전원위원장(全院委員長)으로 선임되었고, 1922년 5월에는 제4대의정원의장에 선임되어 입법활동과 함께 독립운동의 방략을 계획, 실천하였다.

그 해 10월 김구(金九)·여운형(呂運亨) 등 16명과 함께 군인양성과 독립전쟁의 비용조달을 목적으로 한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향후 10년 동안 1만여 명의 노병(勞兵)을 양성하여 독립전쟁 요원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으며, 100만원 이상의 군자금을 적립하여 역시 전쟁수행에 충당할 목표하에 동지들을 규합, 독려하여 이 운동을 대대적으로 펴나갔다.

또한, 인재를 육성할 계획하에 중국 각지의 군사강습소·병공국(兵工局)·학생단(學生團) 등에 파견하여 전문적인 훈련과 강습을 받게 하였다.

그 뒤 대한적십자회의 상의원으로 김구·이유필·김규식(金奎植)·이규홍(李圭洪)·안창호(安昌浩) 등과 함께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한국독립운동문류(韓國獨立運動文類)』(한국임시정부선전위원회편)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법통성』(이현희, 동방도서, 1987)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독립운동사』 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한국독립운동사자료』 1(국사편찬위원회, 1970)
집필자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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