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훈경(勳卿), 호는 국원(菊園). 아버지는 김담수(金聃壽)이다. 정구(鄭逑)·정경세(鄭經世)의 문인이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향리에서 학문 연구에 힘썼다.
먼저 정구에게 위기지학(爲己之學)을 배웠고, 뒤에 상주의 정경세를 따라 도학을 닦았는데, 임진왜란의 와중에서도 경의(經義)의 연마에 힘쓰고 후진양성에 노력하였다. 상주의 낙암사(洛巖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