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훈련대장, 총융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대기(大器)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1735년(영조 1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훈련대장|총융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정자 (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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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훈련대장, 총융사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자는 대기(大器). 무과에 급제, 여러 낮은 직책을 거쳐 1703년(숙종 29) 함경남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706년 총융사(摠戎使)가 되어 북한산성 축조를 건의, 이를 실현하게 하였다.

그러나 작업과정에서 부정축재가 있었음이 드러나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가 1713년 포도대장이 되었고, 1719년 통제사(統制使)가 되었으나 역시 탐학한 관리로 탄핵을 받았다.

1720년(경종 즉위년) 한성부우윤, 이어서 포도대장·병조참판·한성부좌윤·어영대장·훈련대장 등을 역임하였으나, 영조 즉위 후 소론으로 취급되어 파직되었다가 1727년(영조 3) 노론이 물러난 정미환국으로 다시 총융사로 기용되었다.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순토사(巡討使)로 출정의 명령을 받았으나 타고갈 말이 없다는 핑계로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또한 반란 주동자의 한 사람이며 사돈간인 이유익(李有翼)을 숨겨주었다 하여 의금부에 구금되었다. 그 뒤 석방의 주장이 있었으나 감옥의 벽을 뚫고 내왕한 혐의를 받아 처형되었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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