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훈련대장, 총융사 등을 역임한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그러나 작업과정에서 부정축재가 있었음이 드러나 대간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가 1713년 포도대장이 되었고, 1719년 통제사(統制使)가 되었으나 역시 탐학한 관리로 탄핵을 받았다.
1720년(경종 즉위년) 한성부우윤, 이어서 포도대장·병조참판·한성부좌윤·어영대장·훈련대장 등을 역임하였으나, 영조 즉위 후 소론으로 취급되어 파직되었다가 1727년(영조 3) 노론이 물러난 정미환국으로 다시 총융사로 기용되었다.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순토사(巡討使)로 출정의 명령을 받았으나 타고갈 말이 없다는 핑계로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또한 반란 주동자의 한 사람이며 사돈간인 이유익(李有翼)을 숨겨주었다 하여 의금부에 구금되었다. 그 뒤 석방의 주장이 있었으나 감옥의 벽을 뚫고 내왕한 혐의를 받아 처형되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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