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은 김택(金澤) 또는 김용묵(金容默). 평안북도 창성 출신.
1907년 군대해산에 격분하여 의병장 왕회종(王會鍾)과 함께 50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평강(平康)·신계(新溪)를 점령하였고, 유격전을 전개하여 금성(金城)·토산(兔山) 등지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그해 8월 11일에는 왕회종·조인환(曺仁煥)·권준(權俊) 등과 함께 1,00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경기도 파주·양주·적성 등지를 점령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때 일본이 소위 폭도대토벌작전을 전개하여 의병활동이 어렵게 되자 의병부대를 해산하였다.
그 뒤 광복단(光復團)에 가입하여 일제 주구배들을 숙청하다가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국민부(國民府) 별동대원으로 활약, 수차에 걸쳐 창성에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30년 이후에는 이진무(李振武)·홍학순(洪學淳) 등과 노농자위군(勞農自衛軍: 후에 조선인독립군이라 개칭)을 조직하고 이진무를 대장으로 추대, 무장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