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묵 ()

근대사
인물
대한제국기 때, 황해도 일대에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하였으며, 국권 피탈 이후 광복단, 국민부 등에서 활동한 의병 ·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김택(金澤), 김용묵(金容默)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6년(고종 13)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평안북도 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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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때, 황해도 일대에서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하였으며, 국권 피탈 이후 광복단, 국민부 등에서 활동한 의병 · 독립운동가.
개설

별명은 김택(金澤) 또는 김용묵(金容默). 평안북도 창성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07년 군대해산에 격분하여 의병장 왕회종(王會鍾)과 함께 50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평강(平康)·신계(新溪)를 점령하였고, 유격전을 전개하여 금성(金城)·토산(兔山) 등지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그해 8월 11일에는 왕회종·조인환(曺仁煥)·권준(權俊) 등과 함께 1,00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경기도 파주·양주·적성 등지를 점령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때 일본이 소위 폭도대토벌작전을 전개하여 의병활동이 어렵게 되자 의병부대를 해산하였다.

그 뒤 광복단(光復團)에 가입하여 일제 주구배들을 숙청하다가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국민부(國民府) 별동대원으로 활약, 수차에 걸쳐 창성에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30년 이후에는 이진무(李振武)·홍학순(洪學淳) 등과 노농자위군(勞農自衛軍: 후에 조선인독립군이라 개칭)을 조직하고 이진무를 대장으로 추대, 무장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한국독립운동사자료』 8(국사편찬위원회, 1979)
『독립운동사자료집』 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독립운동사』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집필자
박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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