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오 ()

근대사
인물
대한제국기 때, 박기섭 의진에서 돌격장으로 활동한 의병장.
이칭
이칭
김창호(金昌浩)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60년(철종 11)
사망 연도
1907년(고종 44)
출생지
황해도 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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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때, 박기섭 의진에서 돌격장으로 활동한 의병장.
개설

일명 김창호(金昌浩). 황해도 연백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당하자 전 군부대신 신기선(申箕善)이 명범석(明範錫)·신종균(申宗均)을 시켜 당시 목천부사(木川府使)이던 박기섭(朴箕燮)에게 고종의 밀지를 전하였다.

이에 박기섭은 황해도 유림들과 의논, 의진을 편성하였는데, 김창오는 걸음이 빠르고 몸이 날래어 돌격장에 추대되었다. 그 해 10월 8일에 배천읍(白川邑)을 습격하여 군아(郡衙)의 경무분견소 우체국에 수장되어 있던 무기를 접수, 의병에게 나누어주었다.

또한, 150여 명의 의병을 인솔하고 연안읍을 습격하여 해주의 일본군 수비대에서 파견된 고노[河野] 소대와 두 시간에 걸친 전투 끝에 큰 전과를 올렸다.

그 뒤 배천 국근리전투(菊根里戰鬪)에서 전사하였으며, 동생 김성호(金醒浩)도 역시 적에게 붙잡혀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집필자
박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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