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김창호(金昌浩). 황해도 연백 출신.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당하자 전 군부대신 신기선(申箕善)이 명범석(明範錫)·신종균(申宗均)을 시켜 당시 목천부사(木川府使)이던 박기섭(朴箕燮)에게 고종의 밀지를 전하였다.
이에 박기섭은 황해도 유림들과 의논, 의진을 편성하였는데, 김창오는 걸음이 빠르고 몸이 날래어 돌격장에 추대되었다. 그 해 10월 8일에 배천읍(白川邑)을 습격하여 군아(郡衙)의 경무분견소 우체국에 수장되어 있던 무기를 접수, 의병에게 나누어주었다.
또한, 150여 명의 의병을 인솔하고 연안읍을 습격하여 해주의 일본군 수비대에서 파견된 고노[河野] 소대와 두 시간에 걸친 전투 끝에 큰 전과를 올렸다.
그 뒤 배천 국근리전투(菊根里戰鬪)에서 전사하였으며, 동생 김성호(金醒浩)도 역시 적에게 붙잡혀 순국하였다.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