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강서 출생. 평양의 정의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1936년 일본의 무사시노음악학교(武藏野音樂學校) 예과에 입학하여 1940년 본과를 졸업하였다.
1942년에 일본의 히비야공회당(日比谷公會堂)에서 열린 전일본신인음악회(全日本新人音樂會)에 출연하여 「봉선화」를 불러 화제를 불러 일으켰으며, 귀국 후 김생려(金生麗)가 이끄는 경성후생실내악단(京城厚生室內樂團)의 독창자로서 전국 순회공연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해방 전에는 만주의 신경음악원(新京音樂院)의 성악과장을 역임하였고, 서울관현악단의 창설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등 대표적인 소프라노로 활동을 하였고, 해방 후에도 고려교향악단 창단에 기여를 하는 한편,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의 전신인 경성음악학교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 교수 및 학장으로서 후진양성과 국내 음악발전에 공헌을 하였다.
1972년 고별공연과 함께 은퇴를 한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가 장로교 신자로 신앙생활에만 전념을 하다가 1990년 제자들의 요청으로 서울에서 독창회를 가진 바 있다. 그 후 공식적인 음악활동을 가진 바 없고 숙환으로 미국에서 별세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