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창(咸昌). 추밀원당후관(樞密院堂後官) 김자령(金滋齡)의 아들로, 부인은 시랑(侍郎) 임경식(林景軾)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문장과 학문에 능해서 16세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국자감에 입학, 1178년(명종 8) 과거에 급제하여 외관을 거치지 않고 바로 중앙관에 임용되었다.
이후 영인진부사(寧仁鎭副使)와 감찰어사(監察御史)를 지냈고 1196년 분대찰방사(分臺察訪使)로 서경 및 북계(北界)에 부임하여 능력을 인정받아 우사간지제고(右司諫知制誥)·국자사업(國子司業)·보문각대제(寶文閣待制)·중서사인지제고(中書舍人知制誥)를 차례로 지냈다.
한때 집정자 최충헌(崔忠獻)의 미움을 받아 황주수(黃州守)로 좌천되기도 했는데, 그 뒤 예부시랑과 동궁시독학사(東宮侍讀學士)를 지냈다. 1211년(희종 7) 작성한 묘지석(墓誌石)이 현재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