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 후기에, 중서사인, 지제고, 예부시랑, 동궁시독학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함창(咸昌)
  • 사망 연도1211년(희종 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중서사인지제고|예부시랑|동궁시독학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윤용혁 (공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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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중서사인, 지제고, 예부시랑, 동궁시독학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함창(咸昌). 추밀원당후관(樞密院堂後官) 김자령(金滋齡)의 아들로, 부인은 시랑(侍郎) 임경식(林景軾)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문장과 학문에 능해서 16세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국자감에 입학, 1178년(명종 8) 과거에 급제하여 외관을 거치지 않고 바로 중앙관에 임용되었다.

이후 영인진부사(寧仁鎭副使)와 감찰어사(監察御史)를 지냈고 1196년 분대찰방사(分臺察訪使)로 서경 및 북계(北界)에 부임하여 능력을 인정받아 우사간지제고(右司諫知制誥)·국자사업(國子司業)·보문각대제(寶文閣待制)·중서사인지제고(中書舍人知制誥)를 차례로 지냈다.

한때 집정자 최충헌(崔忠獻)의 미움을 받아 황주수(黃州守)로 좌천되기도 했는데, 그 뒤 예부시랑과 동궁시독학사(東宮侍讀學士)를 지냈다. 1211년(희종 7) 작성한 묘지석(墓誌石)이 현재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 - 『우복집(愚伏集)』

  • - 『한국금석문추보(韓國金石文追補)』(이난영, 아세아문화사,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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