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정(士精), 호는 남봉(南峰)·심곡(深谷). 김석(金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충갑(金忠甲)이고, 아버지는 부사 김시회(金時晦)이며, 어머니는 양언개(楊彦漑)의 딸이다. 증 영의정 김시민(金時敏)에게 입양되었다. 아들이 시인으로 이름을 떨친 김득신(金得臣)이다.
1597년(선조 30)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 설서(說書)를 거쳐 1608년 사가독서(賜暇讀書: 문예부흥을 위하여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하게 하던 제도)하였다. 광해군 때 사복시정(司僕寺正)·이조참의·동부승지·대사간을 거쳐, 교리(校理)·부제학(副提學) 등을 역임하고, 병조참지에 올랐으나 독직사건으로 파면되었다.
한때 이이첨(李爾瞻)의 심복으로 이조에 있으면서 흉한 일을 벌였으며, 대사간이 되어서는 영창대군(永昌大君) 살해음모를 반대하는 정온(鄭蘊)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광해군의 학정이 날로 심해짐을 깨닫고 병을 핑계로 관직에서 물러나 두문불출하였다.
인조반정이 있을 무렵 심기원(沈器遠)과 사전에 내통하여 벼슬길에 다시 올랐으나, 대북파(大北派)로 몰려 유배당하였다. 그 뒤 풀려나 동래부사를 거쳐 1625년(인조 3)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어릴 적부터 학문에 정진하여 경서(經書)에 통달하였고, 특히 점술을 연구하여 천문(天文)에 밝았으나 재물을 탐내어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심곡비결(深谷祕訣)』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