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후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대사간, 정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중(士重)
  • 사촌(沙村)
인물/전통 인물
  • 본관청풍(淸風)
  • 사망 연도1742년(영조 18)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대사간|정주목사
  • 출생 연도1692년(숙종 18)
  • 출생지광주(廣州)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재범 (전 인간문화재,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사촌집 / 남찬록 미디어 정보

사촌집 / 남찬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정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사중(士重), 호는 사촌(沙村). 광주(廣州) 출신. 할아버지는 우참찬 김간(金榦)이고, 아버지는 김태로(金泰魯)이며, 어머니는 강석하(姜錫夏)의 딸이다. 손자가 예조참의를 지낸 김회연(金會淵)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14년(숙종 40) 사마양시에 합격하고 성균관 유생이 되었다.

1716년에 동료 유생 80여 인과 함께 스승인 송시열(宋時烈)을 배반하면서 당여를 이끌고 소론(少論)의 파당(派黨)을 만든 윤증(尹拯)의 반도덕적인 죄를 상소하여 규탄하였다. 1722년(경종 2) 영소전참봉(永昭殿參奉)이 되고, 1726년(영조 2)에 의금부도사가 되었다.

그 해에 알성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典籍)이 되었다. 그 뒤 승지·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을 거쳐, 1730년에 대사간이 되었다. 그 해에 영조가 당쟁의 폐단을 없애기 위하여 선포한 탕평책(蕩平策)에 반대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위도(蝟島)로 유배되었다.

2년 후 풀려나와 1738년에 다시 대사간에 기용되었다. 1742년 경상도관찰사에 이어 정주목사로 임명되었으나 부임 도중 죽었다. 저서로 『사촌집(沙村集)』이 있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사마방목(司馬榜目)』

  • - 『운계만고(雲溪漫稿)』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