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정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16년에 동료 유생 80여 인과 함께 스승인 송시열(宋時烈)을 배반하면서 당여를 이끌고 소론(少論)의 파당(派黨)을 만든 윤증(尹拯)의 반도덕적인 죄를 상소하여 규탄하였다. 1722년(경종 2) 영소전참봉(永昭殿參奉)이 되고, 1726년(영조 2)에 의금부도사가 되었다.
그 해에 알성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典籍)이 되었다. 그 뒤 승지·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을 거쳐, 1730년에 대사간이 되었다. 그 해에 영조가 당쟁의 폐단을 없애기 위하여 선포한 탕평책(蕩平策)에 반대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위도(蝟島)로 유배되었다.
2년 후 풀려나와 1738년에 다시 대사간에 기용되었다. 1742년 경상도관찰사에 이어 정주목사로 임명되었으나 부임 도중 죽었다. 저서로 『사촌집(沙村集)』이 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운계만고(雲溪漫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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