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2·8독립선언에 참여하였으며, 임시의정원 법제위원, 정무조사 특별위원, 정치분과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동경으로 돌아와 준비를 계속한 끝에 1919년 2월 8일 오후 2시 조선유학생학우회 명목의 집회를 개최하고 독립선언문을 발표하는 데 참여하였다.
2·8 독립선언 후 주모자가 붙잡히자 신변에 위협을 느껴 같은 해 4월 상해로 망명하였다. 7월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임되었으며, 임시의정원 법제위원과 정무조사 특별위원 및 정치분과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21년 11월에는 여운형(呂運亨) · 김규식(金奎植)과 함께 상해를 출발, 다음 해 1월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열린 극동인민대표대회에 참가하였다.
1922년 5월 10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발전적 해체를 논의하기 위하여 소집된 국민대표회주비회에 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23년 1월부터 개최된 국민대표회의가 실패로 돌아가자, 그곳에 머물면서 독립운동을 계속 전개하였다.
광복 이후 귀국하여 제헌의원 · 보사부장관 ·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 『독립운동사자료집』 9·1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1977)
- 『독립운동사』 4·7·9·1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1977·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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