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좌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함경남도병마절도사, 삼도통제사, 수원방어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제백(濟伯)
인물/전통 인물
  • 본관안정(安定)
  • 사망 연도1709년(숙종 3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수원방어사
  • 출생 연도1649년(인조 2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정자 (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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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함경남도병마절도사, 삼도통제사, 수원방어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제백(濟伯). 증조부는 참의 나만갑(羅萬甲), 아버지는 나성원(羅星遠)이며, 어머니는 동지중추 권순창(權順昌)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송준길(宋浚吉)의 문인이었으나 무예를 닦아 선전관을 비롯하여 총부도사(摠府都事)·훈련원정을 거쳐, 1685년(숙종 11) 내금위장이 되었다. 그러나 이때 풍기를 문란시켰다고 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이 후 첨추(僉樞)·훈련도감중군·훈련대장 겸 총관총융사를 거쳐 훈련도정 겸 주사당상이 되었다. 1699년 어영대장을 거쳐 한성좌윤에 임명되고 이듬해 포도대장이 되었다.

외직으로는 중화부사(中和府使)·서흥현감·봉산군수·여산토포사(礪山討捕使)·숙천부사·춘천방어사·정주목사·해미현감·영흥부사·함경남도병마절도사 등을 거쳐 삼도통제사에 제수되었다.

1699년 노·소론간의 대립으로 과옥(科獄)이 일어나자 이듬해 포도대장으로 과옥을 안치하였는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무고를 입고 용천(龍川)에 유배되었다.

1703년에 김창집(金昌集) 등 대신들의 변론을 통하여 풀려나서 춘천방어사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이후 수원방어사에 부임하였으나 곧 사직하였다. 인품은 충효가 돈독하고 식견과 도량이 넓고 맑고 깨끗하였으며, 특히 소송을 처리하는 것이 공평하고, 지방의 황폐한 곳을 잘 다스렸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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