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함경남도병마절도사, 삼도통제사, 수원방어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 후 첨추(僉樞)·훈련도감중군·훈련대장 겸 총관총융사를 거쳐 훈련도정 겸 주사당상이 되었다. 1699년 어영대장을 거쳐 한성좌윤에 임명되고 이듬해 포도대장이 되었다.
외직으로는 중화부사(中和府使)·서흥현감·봉산군수·여산토포사(礪山討捕使)·숙천부사·춘천방어사·정주목사·해미현감·영흥부사·함경남도병마절도사 등을 거쳐 삼도통제사에 제수되었다.
1699년 노·소론간의 대립으로 과옥(科獄)이 일어나자 이듬해 포도대장으로 과옥을 안치하였는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무고를 입고 용천(龍川)에 유배되었다.
1703년에 김창집(金昌集) 등 대신들의 변론을 통하여 풀려나서 춘천방어사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이후 수원방어사에 부임하였으나 곧 사직하였다. 인품은 충효가 돈독하고 식견과 도량이 넓고 맑고 깨끗하였으며, 특히 소송을 처리하는 것이 공평하고, 지방의 황폐한 곳을 잘 다스렸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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