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9년(예종 1)작. 높이 158㎝, 입지름 98㎝. 1968년 12월 19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4월 5일에 발생한 낙산사 경내 산불로 인하여 용해되어 문화재(현, 국가유산)에서 지정해제 되었다.
낙산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세조를 위하여 그의 아들인 예종의 명으로 주성한 종이다. 용두(龍頭)는 웅건한 몸체, 사실적인 용린(龍鱗)과 어울려 생동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몸체 중간에 굵은 융기횡대(隆起橫帶)를 쳐서 상하로 크게 구분하고 있다.
용통(甬筒) · 유곽(乳廓) · 유두(乳頭)는 모두 생략되었고, 상대(上帶)가 위치한 자리에는 범자(梵字) 12자가 양주(陽鑄)되어 있으며, 종견(鐘肩)에 연화문(蓮花文)을 빽빽이 배열하고 있다. 유곽 자리에는 네 구의 보살입상이 배치되고 그 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네 개씩의 범자가 양주되어 있는데, 이 양주된 보살입상은 원형두광(圓形頭光) · 보관(寶冠) · 천의(天衣) 등을 모두 유려한 선조(線彫)로 표현하고 있다.
종신의 끝부분에는 태조이선대(太彫二線帶)를 9.5㎝ 간격으로 둘러 하대(下帶)를 마련하고 있으며, 하대의 내면에는 태조(太彫)의 권운문(卷雲文)과 세조(細彫)의 파상문(波狀文)이 조식(彫飾)되어 있다.
하대와 중대 사이에는 장식문양 대신 ‘成化五年乙丑(성화5년을축)’이라는 주성 연대를 밝히는 명문을 비롯하여 많은 명문이 돋을새김되어 있어, 주성 연대와 조각장(彫刻匠) · 주성장(鑄成匠) 등의 주종 관계자를 밝혀주고 있다.
이 종은 각 부 양식에서 우리 나라 고유의 종인 신라와 고려시대의 동종양식을 따르지 않고 조선 전기에 성립된 조선시대 특유의 범종양식을 보이는데, 양주된 보살입상은 우수한 조선시대 조각의 하나로 꼽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