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이전에 창건되었다고 하고 1809년(순조 7)경의 막새기와와 1817년(순조 16)의 상량문이 있어 중수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안채 · 아랫채 · 사당채 · 수오당(守吾堂)이 현존한다.
원래는 대문간채 · 사랑채 · 중사랑채 · 고방채 · 방아실채가 더 있었다 한다. 수오당은 최근세에 용산(龍山)에서 이건하였다 해서 거론되지 않고 있다.
난포는 영천최씨시조 최한(崔漢)의 14세손 최철견(崔鐵堅) 아호이다. 난포고택은 그가 1546년(명종 원년)에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난포공실기(蘭圃公實記)』에 전한다.
난포는 전라도사(全羅都事)를 지냈고 임진왜란 때는 70 고령인데도 창의하여 대장이 되고 손자 최인수(崔仁壽), 증손자 최준립(崔竣立)과 함께 영천의 권응수(權應銖)의병과 합세,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난포고택은 넓은 마당에 서향한 안채가 있고 좌측에 남향한 아랫채 · 안채 · 뒷쪽 동남으로 사당이 있다. 안채는 -자형, 향좌측에서부터 부엌 2칸, 안방 1칸, 대청 2칸, 작은방 1칸, 마루방 1칸 순이다.
간방통(間半通)으로 앞퇴가 있고 안방 뒷벽엔 고미다락이 있다. 이 집의 특색은 마루 앞에도 문을 달았다는 점이다. 마당에서 바라다 보면 부엌은 널문, 안방 건너방은 머름 위에 두짝 띄살창, 대청은 두짝의 띄살문 분합, 마루방은 외짝살대문이다.
홑처마 맞배지붕인데 좌우 끝에 가적지붕을 덧달아 마감하였다. 영천 · 경산 지역의 특성인 지붕형태이다. 사당은 정면 2칸, 측면 1칸 앞퇴 없는 가묘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