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포고택

  • 생활
  • 유적
  • 시도문화유산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에 있는 조선전기 전라도사·의병대장 출신 난포 관련 주택.
시도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영훈 (전 문화재관리국, 건축사)
  • 최종수정 2024년 05월 29일
경산 난포고택 정침 정측면 미디어 정보

경산 난포고택 정침 정측면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에 있는 조선전기 전라도사·의병대장 출신 난포 관련 주택.

내용

197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이전에 창건되었다고 하고 1809년(순조 7)경의 막새기와와 1817년(순조 16)의 상량문이 있어 중수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안채 · 아랫채 · 사당채 · 수오당(守吾堂)이 현존한다.

원래는 대문간채 · 사랑채 · 중사랑채 · 고방채 · 방아실채가 더 있었다 한다. 수오당은 최근세에 용산(龍山)에서 이건하였다 해서 거론되지 않고 있다.

난포는 영천최씨시조 최한(崔漢)의 14세손 최철견(崔鐵堅) 아호이다. 난포고택은 그가 1546년(명종 원년)에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난포공실기(蘭圃公實記)』에 전한다.

난포는 전라도사(全羅都事)를 지냈고 임진왜란 때는 70 고령인데도 창의하여 대장이 되고 손자 최인수(崔仁壽), 증손자 최준립(崔竣立)과 함께 영천의 권응수(權應銖)의병과 합세, 여러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난포고택은 넓은 마당에 서향한 안채가 있고 좌측에 남향한 아랫채 · 안채 · 뒷쪽 동남으로 사당이 있다. 안채는 -자형, 향좌측에서부터 부엌 2칸, 안방 1칸, 대청 2칸, 작은방 1칸, 마루방 1칸 순이다.

간방통(間半通)으로 앞퇴가 있고 안방 뒷벽엔 고미다락이 있다. 이 집의 특색은 마루 앞에도 문을 달았다는 점이다. 마당에서 바라다 보면 부엌은 널문, 안방 건너방은 머름 위에 두짝 띄살창, 대청은 두짝의 띄살문 분합, 마루방은 외짝살대문이다.

홑처마 맞배지붕인데 좌우 끝에 가적지붕을 덧달아 마감하였다. 영천 · 경산 지역의 특성인 지붕형태이다. 사당은 정면 2칸, 측면 1칸 앞퇴 없는 가묘형이다.

참고문헌

  • - 『난포고택실측동사보고서』(경산군, 1991)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