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열(咸悅). 자는 여상(汝常), 호는 창주(滄洲). 할아버지는 남지(南芷)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남율(南嵂)이며, 어머니는 한옹(韓顒)의 딸이다.
1646년(인조 24)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2년(효종 3)에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1669년(현종 10) 예조정랑으로 길재(吉再)·김장생(金長生)을 제향한 서원에 사액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뒤 일곱번이나 군현의 수령을 지냈다.
1690년(숙종 16)에는 승문원판교 겸 춘추관편수관을 거쳤으며, 시정(寺正)까지 이르렀다. 문장과 서화에 뛰어났으며, 특히 속필로 유명하다. 청백(淸白)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작품으로 개풍천마산(開豐天摩山)의 대흥사중건비문(大興寺重建碑文)의 글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