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판소리 서편제 (판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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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판소리 서편제 / 안채봉
남도판소리 서편제 / 안채봉
국악
개념
광주광역시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 · 보호하는 서편제 판소리의 춘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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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광주광역시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 · 보호하는 서편제 판소리의 춘향가.
내용

1989년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예능보유자 안채봉(安彩鳳)은 11세 때 백부인 안영환의 소개로 광주 남동의 권번(券番:기생수업학교)에 들어가 박동실(朴東實)에게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여 그를 따라 청진·광주·목포 권번으로 옮겨 다니며 창과 가야금을 수업했다. 또한 오유동에 살던 조몽실(趙夢實)에게 춘향가를 배웠다.

17세에 화초머리를 얹었고 1년간 살다가 집을 나와 19세에 일본으로 건너 가서 이화중선(李花仲仙)과 함께 징용동포 위문공연에도 출연하였으며 귀국 후엔 시집인 나주 노안면에서 3년간 살림을 살았다.

그러다가 서울로 올라가 임방울·박초월 등과 더불어 국극단 활동을 했으며, <선화공주> 등에 출연하였다. 서울에서 7∼8년 살다가 6·25전쟁을 만나 임방울(林芳蔚)과 김종기(金宗基, 가야금 명인)와 함께 12일간을 걸어서 전라도 광주까지 피난왔다. 32세 때에 다시 정응민(鄭應珉)의 문하에 들어가 4년간 강산제 <심청가>와 <적벽가>를 연마했다.

박동실은 박유전-이날치(李捺致)-김채만(金采萬)으로 내려오는 서편제 계보이며 조몽실은 정창업(丁昌業)-김창환(金昌煥)의 계보이다. 조몽실은 어려서부터 같은 마을의 공창식에게 <심청가> 등을 전수받았다.

뒤엔 김창환한테서 <춘향가>와 <흥보가>를 배운 다음 고향으로 돌아와 3년간을 독공하여 타고난 성음이 탁하고 성량이 부족한 결점을 노력하여 갈고 닦아 딛고 일어서 수리성에 귀성과 애원성이 깃든 성음을 얻었다. 또한 정응민은 박유전-정재근의 문도이다.

안채봉은 다양한 스승들의 기예를 이어받아 자신의 경지를 이루었다. 그는 판소리 이외에도 가야금병창·살풀이·소고춤에 뛰어났으며 서편제의 가창자이면서도 동편제의 기법을 표출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의 보유자이다. 근래엔 소리를 많이 잊어버렸고, 춘향가에서 주로 어사가 박석고개 넘는 데서부터 어사 출도하여 춘향과 만나는 대목까지를 즐겨 부른다.

참고문헌

『판소리 이백년사』(박황, 사사연, 1987)
『文化財目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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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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