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의 뒤를 이을 왕위계승권을 둘러싸고 왕세자와 세도가 사이에 갈등이 있어, 이것을 풍자하고 예언한 것이다. 『증보문헌비고』 권71에 전한다.
태조는 전후취(前後娶)를 통해서 여러 아들을 두어 왕위를 계승할 왕세자를 정하는 문제가 있었으나, 전취인 신의왕후(神懿王后)가 낳은 아들에서 정하지 않고 후취인 신덕왕후(神德王后) 소생인 이방석(李芳碩)으로 정하자, 세도가인 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 등이 왕세자 쪽에 가담하여 이방원(李芳遠) 형제와는 사이가 멀어지고 알력이 있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형세가 역전해서 이방석 형제가 죽고 이방원이 득세하여 정도전과 남은도 함께 목숨을 잃게 되었다. 왕권계승을 둘러싸고 이러한 사건이 있기 전에 「남산요」는 정도전과 남은이 죽을 것을 예언한 참요라 한다. 「남산요」의 내용은 ‘피남산왕벌석 정무여(彼南山往伐石釘無餘)’, 즉 ‘저 남산에 가 돌을 깨니 정이 남음이 없네.’라는 뜻이다.
이 노래에는 정(釘)과 정(鄭)은 음이 같아 정도전을 뜻하고 ‘남음이 없다.’는 남은과 음이 같은 데서 비유한 것이다. 이렇듯 참요는 간접적인 비유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 바 「남산요」도 우의(寓意)로 사건을 예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