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좌참찬,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55년(효종 6) 통신사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파견되었는데, 관백(關白)의 원당(願堂)에 절하기를 거절하여 음식 공급이 중지되고, 여러가지 협박을 받았으나 굴하지 않았다.
이듬해 돌아와 호당(湖堂: 독서당)에 뽑혀 들어갔고 문신 중시에 장원, 당상관으로 진급하여 형조·예조참의, 승지를 역임하고 양주목사로 나갔다. 현종 때는 대사간·대사성을 거쳐 공조참판을 빼고는 전 참판을 지냈으며, 잠시 외직으로 경상·경기감사로 나갔다가 형조판서에 올랐다.
1680년(숙종 6)부터 좌참찬·예문관제학을 역임하고, 1689년 소의 장씨(昭儀張氏)가 왕자를 낳아 숙종이 그를 원자로 삼으려 하자, 여기에 극언으로 반대하다가 명천으로 유배되어 3년 뒤 그곳에서 죽었다.
문장에 능하고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효종·현종·숙종 3대에 걸쳐 청화요직을 두루 역임하고 문명을 날렸으나 즐거워하는 기색이 없었고, 늘 근신하고 근면하였다.
저서로는 신라시대부터 조선 인조대까지의 명인 497인의 시를 모아 엮은 『기아(箕雅)』 및 『부상록(扶桑錄)』, 그리고 자신의 시문집인 『호곡집(壺谷集)』을 남겼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참고문헌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호곡집(壺谷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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