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월산리 고분군 ( )

선사문화
유적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아영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계통의 구덩식돌방무덤 · 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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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아영면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계통의 구덩식돌방무덤 · 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소백산맥 서편에 있는 아영면은 높이 450m 내외의 고원지대이다. 이웃 경상남도 함양군 상백리 고분군과는 같은 지역권에 속한다. 모두 9기의 고분이 있었으나 도굴로 인해 거의 파괴되었다.

그 중 1기(M1호분)와 주변의 낮은 봉분 흔적이 있는 2기(M2· M3호분)가 1982년 88올림픽 고속도로공사 착수를 계기로 원광대학교에 의해 발굴되었고, M4호분도 조사되었다.

내용

M1호분의 규모는 지름 20m 내외, 높이 2m 내외이며 다른 것도 거의 같다. M2· M3호분은 파괴되었을 뿐만 아니라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다. M1호분 내에서는 도합 7기의 지하유구가, M2· M3호분에서도 각 1기의 돌덧널이 발견되었다.

이곳의 지하매장유구는 세 유형으로 구분된다.

① 제Ⅰ형 상식 석관(箱式石棺) : 판석으로 작은 돌덧널을 짜고 뚜껑돌을 덮었으며 바닥에는 잔돌을 깔았다. 규모는 길이 1.9∼1.3m 내외, 너비 0.5m 이내, 높이 60㎝ 미만이다(M1-B · C · D · F호분).

② 제Ⅱ형 무개석(無蓋石) 돌덧널 : 잡석으로 4벽을 쌓고 뚜껑돌이 없다. 바닥평면은 장방형이나 양측벽은 배부른 보트형을 이룬다. 규모는 길이 3.77∼4.75m 전후, 단벽 너비 0.55∼0.74m, 중간 너비 1.04∼0.85m, 높이 0.85m 정도이다(M1-E · G호분, M2· M3호분).

③ 제Ⅲ형 장방형구멍식〔豎穴式〕대형돌방〔石室〕 : 네 벽은 잡석과 진흙으로 혼축하고 뚜껑돌을 덮었으며 바닥에는 돌을 깔았다(M1-A · M4호분). M1-A호분은 돌방 바닥 길이 8.60m, 너비 1.36m, 높이 1.85m이고, M4호분은 길이 8.25m, 너비 1.0m, 높이 1.45m로서 약간 규모가 작다.

이와 같은 세 가지 형식이 M1호분의 경우에는 하나의 분구 밑에 있어 여러덧널식〔多槨式〕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M1호 분구를 축조할 때 부근의 M1-G · M2호분 등 돌방 윗부분을 분구 경사에 맞추어 날려버린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는 제Ⅰ · Ⅱ형 축조자와 제Ⅲ형 축조자가 전혀 다른 집단이었음을 말해준다.

부장품에 있어서도 각 돌방유형별로 차이가 있어 시기의 선후관계나 축조자들의 문화적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제Ⅰ형에서는 적색토기배, 와질(瓦質)의 짧은목항아리〔短頸壺〕, 입큰소형단지〔廣口小壺〕, 철도끼 · 낫 · 손칼〔刀子〕 등이 출토되어 부장품은 매우 빈약한 편이다.

제Ⅱ형에는 같은 형식이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긴목항아리, 짧은목항아리, 입큰소형단지 등은 공통적으로 출토되지만, M2호는 와질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M1-E · M3호는 도질토기(陶質土器)가 출토되어 통형(筒形) 또는 반형(盤形)의 단지받침〔坩臺〕이 있다. M2호에서는 받침달린긴목항아리도 있었다. M3호에서는 철살촉 · 낫 · 철투겁창 · 철도끼 · 손칼 외에 띠고리〔鉸具〕 등이 출토되어 제Ⅱ형 중에서는 가장 늦은 시기의 것이다.

제Ⅲ형에서는 후장(厚葬)의 양상이 나타난다. 도질토기로는 긴목항아리 · 단지받침 · 굽다리접시〔高杯〕 · 뚜껑 등이 있고, 철기로는 창끝 · 손칼 · 철살촉 · 고리큰칼〔環頭大刀〕손잡이, 그리고 낫 · 도끼모양의 소형 미니어처 등이 있었다. 철살촉은 사두형(蛇頭形) · 광엽능형(廣葉菱形) · 도자형(刀子形)의 세 종류가 있다.

이 밖에 판갑옷〔短甲〕조각 · 갑옷미늘〔挂甲札片〕 등의 무구(武具), 콩팥형 재갈멈치〔鏡板〕가 붙은 말재갈, 나무에 철판을 씌운 디딤쇠〔木心鐵張鐙子〕조각, ㄷ자형 판등(板鐙) 한 쌍, 안장고리 · 띠고리 · 밑동쇠〔座金具〕 등의 마구, 관못 · 꺽쇠 등이 있었다. M4호에서는 유리구슬 · 금귀고리 등도 나왔다.

이러한 제Ⅲ형에서 출토된 부장품의 특징은 긴목항아리의 무늬, 낫 · 도끼의 미니어처, 갑옷미늘, 마구, 관구(棺具) 등을 볼 때, 대가야의 옛 땅인 고령 지산동고분 돌방과 가장 유사성이 많다.

월산리고분 출토품 중 가장 주목을 끈 것은 철지금은사상감소화입구갑문(鐵地金銀糸象嵌小花入龜甲文)의 칼고리〔環頭〕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거북등무늬 칼고리는 경주 출토, 고령 지산동 주산 제39호 출토, 오구라콜렉션(小倉Collection) 제306호(창녕 출토), 무령왕릉 출토 등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개 금박이거나 문양을 두드려 돋친 수법을 썼으며, 용봉무늬〔龍鳳文〕였다. 따라서 금은사로 상감하고 거북등무늬 내에 작은 꽃을 꾸민 것은 이 분의 예가 처음이라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연대를 살펴보면, 상식 석관인 제I형은 토기의 특징으로 보아 5세기 전반경, 제Ⅲ형은 돌방형식이나 토기 · 철기 등의 부장품과 칼고리의 무늬, 상감수법 등을 감안할 때 5세기 말에서 6세기 전반경, 제Ⅱ형은 그 중간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남원월산리고분군발굴조사보고(南原月山里古墳群發掘調査報告)』(전영래,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1983)
집필자
전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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