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에 있는 삼국 시대 백제의 세발토기·세경호 등이 출토된 가마터.
내용
조사된 도요지는 아궁이쪽이 파괴되었을 뿐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었다. 요지의 구조는 위쪽은 약 1m, 아래쪽은 약 20㎝ 정도의 지면 아래에 묻혀 있었으며, 아랫변이 넓고 윗변이 좁은 둥근사다리꼴의 바닥평면을 이루고 있다.
가마터의 바닥은 길이 6.0m, 너비는 아랫변이 4.5m, 윗변이 2.0m에 이른다. 아랫변 동북쪽에는 아궁이터[焚口]가 있고, 그 반대편 대각선상 윗변 끝에 굴뚝고래[煙炕]가 있다.
바닥은 약 20∼30㎝ 두께의 검은 숯층[炭灰層]이 있고, 이 숯층에 도기조각과 숯덩이가 퇴적되어 있다. 그 위층은 가마터 천장이 내려앉은 20㎝ 내외의 불에 탄 진흙층이 덮여 있다. 가마터 바닥은 약 10°의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남변에서 북변으로 약 6°의 경사를 이루고 있다.
아궁이에서 시작되는 불고래[炕洞]는 바닥둘레를 감돌아 굴뚝고래에 연결되는데, 불고래는 깊이 35㎝, 너비 30㎝ 내외이며, 굴뚝고래는 타원형 평면으로 되어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는 원추형 또는 각추형의 다리를 가진 세발토기, 꽃봉오리형 · 접시형의 손잡이가 달린 뚜껑, 두드림무늬가 찍힌 단지, 짧은 직구(直口)의 단지, 세경호(細頸壺) · 시루밑조각 등으로 다양한데, 단지바닥은 거의 평평하다.
이 유적은 구조가 밝혀진 대표적인 삼국시대의 요지 중 하나로서, 이곳에서 출토된 토기조각은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구룡리,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 · 표정리 등에서 출토된 중앙 연도가 달린 횡혈식 석실에 부장된 토기와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으므로, 제작 연대는 6세기 후반 무렵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 「전북고창운곡리익산신룡리요지(全北高敞雲谷里益山新龍里窯址)」(전영래, 『백제시대의 요지연구』, 문화재관리국, 1988)
- 「고창운곡리백제요지발굴조사약보(高敞雲谷里百濟窯址發掘調査略報)」(전영래, 『전라북도유적조사보고』14, 198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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