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정부(正夫), 호는 무민당(无悶堂). 아버지는 남융달(南隆達)이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즐겨하고, 벼슬에는 별로 뜻이 없었다. 그러나 부모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서 사마시에 합격을 하였으나 여전히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성장해서는 국난이 겹쳐 병자·정묘의 호란이 있자, 아버지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적들과 맞서 싸워 많은 공을 세웠다. 1633년(인조 11) 다시 사마시에 응하여 합격하였으나 그때 아버지가 졸하자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다만, 독서와 저술로 여생을 살았다. 저서로는 『중용차의(中庸箚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