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읍성

  • 예술·체육
  • 유적
  • 시도자연유산
조선 전기, 충청남도 보령에 세운 석축 읍성으로 충청남도 기념물 제10호.
이칭
  • 이칭남포(藍浦) 진성(鎭城)
유적
  • 건립 시기1390년(공양왕 2)~1451년(문종 1)
  • 관련 국가고려, 조선
  • 높이4.5m(여장 포함)
  • 둘레750m
  • 면적86.528㎡
  • 소재지충청남도 보령시
시도자연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2년
  • 서정석 (공주대학교)
  • 최종수정 2024년 02월 21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남포읍성(藍浦邑城)은 충청남도 보령시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이다. 이 읍성은 고려 말 · 조선 초에 지어진 다른 읍성과 마찬가지로 왜구를 방비하기 위해 건설한 것이다. 발굴 조사를 한 결과. 이 성에는 동문, 남문, 서문 3개의 성문이 있고, 성문 바깥쪽으로는 옹성이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정의

조선 전기, 충청남도 보령에 세운 석축 읍성으로 충청남도 기념물 제10호.

발굴 경위 및 결과

남포읍성(藍浦邑城)은 2003년에 성곽에 대한 정밀 지표 조사를 한 결과 성곽의 둘레 및 성의 부대시설이 발견되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회에 걸쳐 시굴 조사가 이루어졌고, 2019년에는 서 · 남 치성(雉城)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때 성벽 바깥쪽으로는 하천 벽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돌로 쌓은 '호안석축'을 갖춘 해자가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2020년에도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동문지, 서문지, 남문지와 남쪽 벽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확인되었다.

건립 경위

고려 말 · 조선 초에 건설된 연안 읍성(延安邑城)이 그렇듯 남포읍성 역시 왜구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변천

『세종실록지리지』 「남포현조」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 공양왕 2년(1390)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 지역에 진성(鎭城)을 축조하였다. 그런데 『세종실록』을 보면, 세종 27년(1445)에 중단되었던 성 건축 사업을 계속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남포읍성은 세종 27년에서 문종 1년(1451)사이에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종실록』에는 성의 둘레가 2,476척, 높이 12척, 여장 높이 3척, 적대 5개, 성문 3개, 옹성이 3개 있고, 성내에 샘이 2개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성밖 2리쯤 되는 곳에 하천을 막아 물을 끌어들인 저수지가 있으며, 해자는 완성하지 못했다고 적혀 있다. 이러한 남포읍성의 형태는 조선 후기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의 발굴 조사에서 해자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문종 이후 어느 시점에 해자를 추가로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형태와 특징

평지에 자리한 남포읍성은 평면의 네모 반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동북, 동남, 서북, 서남 방향에 치성이 각각 1개씩 있으며, 성문은 동문, 서문, 남문 3개소가 있다. 성문 밖으로는 각각 옹성이 있다. 1872년에 제작된 고지도를 보면 객사, 동헌, 내아, 사령청, 공수청(公需廳), 작청(作廳), 장청(將廳), 향청(鄕廳), 형청(刑廳), 책실, 군기책실, 환창 등이 표시되어 있다.

의의 및 평가

남포읍성은 일반적인 읍성과 달리 평면의 네모 반듯한 모양으로 지어졌다. 이 성은 세종 27년(1445)에서 문종 1년(1451)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 초기의 읍성 건축법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아울러 1872년에 제작된 고지도에는 당시의 건물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성내 건축물의 위치, 비정 및 읍성의 구조를 알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원전

  • - 『대동지지』

  • - 『세종실록』

  • - 『세종실록지리지』

  • - 『신증동국여지승람』

  • - 「지방지도」(1872)

  • - 「해동지도」

  • 단행본

  • - 심정보, 『한국 읍성의 연구』(학연문화사, 1995)

  • - 이남석·서정석, 『남포읍성』(공주대 박물관, 2003)

주석

  • 주1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거나 한다. 우리말샘

  • 주2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여기에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거나 공격하거나 한다. 우리말샘

  • 주3

    : 성문 양옆에 외부로 돌출시켜 옹성과 성문을 적으로부터 지키는 네모꼴의 대(臺). 우리말샘

  • 주4

    : 쇠로 만든 독처럼 튼튼하게 둘러쌓은 산성이라는 뜻으로, 방비나 단결 따위가 견고한 사물이나 상태를 이르는 말. 우리말샘

  • 주5

    : 군아(郡衙)에서 구실아치가 일을 보던 곳. 우리말샘

  • 주6

    : 군아(郡衙)와 감영(監營)에 속한 장교가 근무하던 곳. 우리말샘

  • 주7

    : 고려ㆍ조선 시대에, 지방의 수령을 보좌하던 자문 기관. 풍속을 바로잡고 향리를 감찰하며, 민의를 대변하였다. 우리말샘

  • 주8

    : 주로 수군들이 전투를 위하여 해안 벽에 쌓는 성곽. 임진왜란 때 남해안 변(邊)에 많이 축성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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