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역사·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2007년 6월 8일 사적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행궁지는 지금의 남한산성호텔 자리와 그 뒤의 공터를 모두 포함하는 약 1만 평 규모이다. 행궁의 잔재로는 산성호텔 야외휴게실 입구에 서 있는 4각 석재기둥 2개와 그 뒤에 남아 있는 1동분의 주춧돌과 여기 저기에 남아 있는 기와편, 돌축대 등이 있고, 상궐터로 보이는 곳에 주춧돌이 드러나 있다. 남한산성의 행궁은 광주행궁 또는 남한행궁이라 하였으며, 1624년(인조 2) 9월 서장대(西將臺) 아래쪽에 건립되었다.
남한산성 행궁은 다른 행궁과 달리 종묘와 사직에 해당하는 좌전(左殿)과 우실(右室)을 갖추었다. 행궁의 규모는 상궐(上闕) 73칸, 하궐(下闕) 154칸으로 모두 227칸의 규모이다. 상궐은 행궁의 내행전으로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평면적 180.4㎡(55평)이다. 그 중 왕의 침전인 상방이 좌우 각각 2칸씩이고, 중앙의 대청이 6칸, 4면의 퇴칸이 18칸으로 모두 28칸이다.
초석(礎石)은 37개가 남아 있는데, 화강석재로서 초석 상면에 따로 주좌(柱坐)를 만들지 않았으며, 건물기둥이 있었던 흔적이 희미하게나마 둥글게 나 있는 것으로 보아 원형기둥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초석의 크기는 균일하지 않으며, 그 형태 또한 장방형, 정방형, 부정형 등으로 다양하다. 건물 중앙의 어칸대청(御間大廳)으로 사용한 공간은 초석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정면 북퇴칸 내주(內柱) 초석은 훼손되었다.
기단은 건물 정면 동편기단이 이중기단이며, 남북·서편은 단일기단이다. 기단의 높이는 약 80㎝로 가구식(架構式) 기단구조로 축조되었다. 기단토는 할석과 잡석·회덩이·와편 등을 황갈색 점토로 섞어서 다짐했다. 기단 장대석인 지대석(地帶石)·면석(面石)·갑석(甲石)은 훼손되어 없어지고 기단 하부의 적심석열만 남아 있다.
온돌은 상궐건물지 내 남·북퇴간 옆 협간에서 각 2개 소씩 모두 4개 소가 발견되었다. 이 온돌시설들은 건물 기단토를 구축한 후 되파기하여 축조하였다. 상궐의 담장지는 건물을 중심으로 내곽과 외곽의 2중으로 구축되었으며, 담장 폭은 1m 내외이다.
하궐은 상궐의 외전인 외행전으로서 상궐 동편 삼문 밖에 있으며, 해발 369m로서 상궐지에 비해 약 6m 낮은 위치에 있다. 하궐은 상궐과 함께 1624년(인조 2) 총융사 이서(李曙)가 남한산성 수축과 함께 시작하여 이듬해에 준공되었다. 서쪽 담의 문으로 일장각(日長閣)과 통하였고, 동쪽의 정문이 한남루이다.
하궐지의 규모는 동서 30m, 남북 70m, 전체 면적 2,100㎡(635평)으로서 발굴조사 결과 하궐지는 상당 부분이 훼손되었음이 밝혀졌다. 상궐과 하궐을 포함하여 행궁을 구성했던 부속시설로 좌전(左殿), 우실(右室), 재덕당(在德堂), 한남루(漢南樓), 인화관(人和館) 등이 있었다. 행궁 및 부속시설은 인조 이후 건립된 것으로 19세기 초까지 계속 증축, 보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