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국문필사본. 그의 나이 54세 때 남해로 귀양가서 6개월을 지내고 돌아와 이 글을 지었다. 표제는 한문으로만 되어 있고, 내제는 ‘남ᄒᆡ문견녹’으로 되어 있다.
저자는 1763년 문과에 급제하여 언관(言官)으로만 여러 벼슬을 지냈으며, 1771년에는 수찬·부수찬을 지내다가 귀양가게 되었다. 이 작품은 1771년 2월 남해섬에서 가까운 노량(露梁)나루에 도착하면서부터 귀양이 풀렸다는 소식을 들은 7월 현지 주민들과 이별의 정담을 나누기까지의 전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주요내용으로는 노량나루와 이순신(李舜臣), 남해읍 마애비(磨崖碑), 친분 있는 유배객의 만남, 죄인으로 생활비를 마련하던 일, 금산(錦山)의 아름다운 경치, 남해섬에서 나는 물산(物産), 남해도민들의 생활습속, 효자 이성삼의 이야기, 열녀 김연대의 이야기, 남해지방 토속어, 여거사(女居士)들의 폐단, 현지의 교리(校理) 유언호(兪彦鎬)와 지낸 일, 본토남자들이 본가를 버리고 이 섬에 와서 현지 여자들과 새살림을 차리는 나쁜 풍습에 관한 이야기, 하동(河東)에 산다는 동성 유씨(同姓柳氏)들의 선물에 관한 이야기, 지은이의 벗 사귀는 철학 등이 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바 산문유배기행록 가운데 국문으로 된 최초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가치를 가진다. 또한 조선 영조 때 적객(謫客)들의 생활상 및 당시 남해 서민들의 생활상과 풍속 등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되고, 그 곳의 말과 서울말을 견주어가며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국어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