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백관지에는 국초에 내의령(內議令)을 두었다가 982년(성종 1) 당나라 제도를 본받아 삼성(三省)을 설치하면서 내사성의 장관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내사령이 내의령의 후신이라는 데는 이설도 있다.
1061년(문종 15) 6월 중서령으로 고쳤다. 품질은 종1품이고 정원은 1인이었다. 내사령은 문하성의 장관인 문하시중과 품질이 같지만 격이 높으므로, 마땅히 내사성과 문하성을 합친 내사문하성의 장관이 되어야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였다. 내사령은 상설 관직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인원에 구애됨이 없이 왕자와 중신에게 수여되는 명예직이었다. 고려의 실질적인 수상은 문하시중이었다.
그러므로 이제현(李齊賢)도 성오(省五)에 보이는 5직의 재신을 거론함에 있어, 시중·평장사(平章事)·참정(叅政, 叅知政事)·정당문학(政堂文學)·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를 들고 내사령은 빼고 있는 것이다. →중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