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의사인이 기록에 처음 보이는 것은 『고려사』 백관지(百官志)에 930년(태조 13) 내의사인을 두었다는 간단한 기록이다.
내의성은 태조 즉위 이후부터 내의사인을 두었다는 태조 13년 사이에 신설되었다고 추측된다.
내의사인은 성종 때의 내사문하성제(內史門下省制)에서는 내사사인(內史舍人)으로, 문종 때의 중서문하성제에서는 다시 중서사인으로 바뀌어 간쟁(諫諍)·봉박(封駁)권을 가지는 성랑(省郎, 郎舍)의 한 구성원으로서 간관의 구실을 담당하게 된다. →내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