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우찬성, 영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1489년에 공조판서가 된 데 이어 6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였으며, 외직으로는 경기도관찰사를 지냈다. 1498년(연산군 4) 의정부우참찬이 되고, 1500년 교성군(交城君)에 봉해 졌다. 1503년 우찬성에 올랐으나, 이듬해 일어난 갑자사화에 연좌되어 무장(茂長)으로 장배(杖配)되었다.
그 뒤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귀양에서 풀려나와 다시 우찬성이 되었다가 1507년(중종 2)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로 승진하였다. 이때 명나라에 가서 중종 즉위의 경위를 설명하고 명나라 왕으로부터 권서국사(權署國事)의 칙지를 받아 귀국하였다. 그 공로로 원종공신(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고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에 올랐다.
1514년 영중추부사로 벼슬을 그만둔 뒤 궤장(几杖)이 하사되었다. 충성심과 효심이 지극하고 일가친척의 관혼상제를 두루 살폈으나, 자신은 검소한 생활에 만족하였다.
참고문헌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이락정집(二樂亭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