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뒤 국제사회당(國際社會黨)이 약소민족들을 결합해 세계인민연맹(世界人民聯盟)을 결성하기로 하였다.
1919년 8월 네덜란드에서 개최한 준비대회에서 대한독립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재를 승인하였는데, 대회에 참석한 임시정부의 조소앙(趙素昻)이 이 소식을 재미 한국인에게 전달하면서 외교활동 자금을 청구하자, 이를 지원하기 위해 1919년 12월 캘리포니아에서 이순기(李舜基)·이살음(李薩音)·임일(任日)·김호(金乎)·이범영(李範榮)·김여식 등이 발기해 조직하였다.
표면상의 조직 목적은 한국인 노동자의 생활 향상과 한국의 사회개혁을 표방한 사회주의 성격을 띠었다. 단체의 장(長)은 ‘수령(首領)’이라 하고 이살음이 맡았으며, 당원은 350여 명이었고 대부분 이승만(李承晩)의 후원자들이었다.
같은 달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당 대회를 소집하였다. 여기서 한국 독립을 승인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1920년 제네바의 세계인민연맹결성대회에 한국인민대표를 파견하기로 결의하고, 조소앙을 대표로 선정하였다.
세계인민연맹결성대회에 참가할 것을 목적으로 프랑스의 파리에 가 있던 조소앙에게 1920년 2월, 세계인민연맹결성대회에 대한 일체의 권리를 위임하였다. 이 대회에서 한국 독립에 대한 승인을 받아낼 것과 세계인민연맹에 가맹할 것 등을 그 내용으로 하는 신임장과 활동 경비 2,500달러를 보냈으나, 조소앙은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 뒤 조소앙은 영국의 런던에 가서 영국 노동당과 교섭해 한국문제에 대한 의안을 하원에 제출하게 하였다. 1922년 3월에는 공산당총회에 한국문제를 제출하고 공산당의 원조를 얻기 위해 모스크바에 갔으나 성과를 얻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당의 외교활동은 끝을 맺게 되었다. 그 뒤에는 이승만의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를 후원하는 등 이승만의 지지활동만을 벌였다.
1925년 3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임시대통령 이승만이 탄핵받아 면직당하게 되자, 같은 해 5월 이살음·정지영(鄭知榮)·김순권(金淳權)·이범영·이순기 등이 중심이 되어 대한민국임시의정원에 성토문을 보내어 이승만을 옹호하고 임시정부를 반대하는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으나, 이승만이 하와이로 간 뒤 중지되었다. 기관지로는 『동무』라는 잡지가 1920년 8월부터 1923년 4월까지 발행되었으며 당의 활동과 공산주의이론을 수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