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및 편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1책의 필사본이다.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노성읍지(魯城邑誌)』는 1901년(광무 5)에 베껴 써서 편찬하였다.
수록 항목은 진관(鎭管), 방리(坊里), 도로,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성지(城池), 관직(官職), 산천, 성씨(姓氏), 풍속, 단묘(壇廟), 제언(堤堰), 창고(倉庫), 물산(物産), 교량, 관애(關阨), 봉수(烽燧), 누정(樓亭), 제영(題詠), 사찰, 고적, 인물, 효자, 한전(旱田), 수전(水田), 진공(進貢), 조적(糶糴),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봉름(俸廩), 군병, 책판(冊板), 선생안(先生案) 등으로 구성하였다. 선생안 항목에는 노성현(魯城縣)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부임한 역대 124명의 관료 명단을 수록하여 지역에 부임한 인사들의 성향을 살필 수 있다.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와 수록 항목에 있어 차이점이 있다. 『노성읍지』는 『여지도서』의 29개 항목보다 6개 항목[진관, 성지, 관애, 제영, 효자, 책판, 선생안]이 더 많다. 덧붙여, 『여지도서』에만 수록되어 있는 항목은 ‘공해’이다. 『여지도서』와 『노성읍지』의 항목 구성이 차이 나는 이유는 시기별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즉 18세기의 전국 지리지와 19세기의 지방 읍지 편찬관이 변화하였으며, 시기별 읍지의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랐음을 의미한다. 두 문헌을 비교 검토하여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 노성 지역의 향토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조선시대 광범위하게 편찬된 읍지는 지방 각 읍의 지지(地誌)인 동시에 지방사이자 행정 사례집이다. 『노성읍지』 역시 조선시대 충청남도 노성현의 지방행정과 경제, 사회적 배경 및 지방의 특징과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