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光州). 아버지는 노덕기(盧德驥)의 첩자(妾子)인 노희동(盧希同)이다.
일찍이 우림위(羽林衛)의 병졸이 되었으나, 임사홍(任士洪)의 비행에 연루되어 직첩이 환수된 바 있다.
1507년(중종 2) 대사성 이과(李顆) 등이 중종반정에 대한 논공행상에 불만을 가지고 있자, 이를 역모로서 무고하여 추성보사우세정난공신(推誠保社佑世定難功臣) 1등에 책록되고 광원군(光原君)에 봉해졌으며, 가정대부(嘉靖大夫)로서 정2품 당상관에 올랐다.
이로부터 역모를 무고하는 무리가 많이 생겼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비웃고 좋아하지 않았으나, 임금의 총애로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교만하고 방자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리하여 사림들이 삼사의 요직을 장악하면서 탄핵이 계속되어 마침내 공신녹권이 환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