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전기에, 중추부사 상호군, 삼사사, 호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고려사(高麗史)』 양규(楊規) 열전에 따르면 “거란군이 노전을 통주(通州)에 보내어 항복을 권하는 격문(檄文)을 가지고 가게 하였다가 그곳에 억류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1298년(충선왕 즉위년)에 충선왕은 즉위년 교서에서 “거란병을 격퇴한 서희(徐熙) · 하공진(河拱辰) · 노전 · 양규 등의 내외손(內外孫)과 현손(玄孫) 중에서 1명에게 초입사(初入仕)를 허(許)하라.”고 하였고, 1308년(충선왕 복위년)에 충선왕은 또한 복위년 교서에서 “현종 때의 공신 하공진 · 노전 · 양규 등의 내외현손(內外玄孫)의 현손은 예에 따라 1호(戶)에 1명에게 초직(初職)을 허락하라.”고 하였다.
1014년에 어사중승(御史中丞)에 올랐고, 1017년에 중추부사 상호군(中樞副使上護軍)이 되었으며, 1023년에 삼사사(三司使)가 되었다가 1031년(덕종 즉위년) 호부상서(戶部尙書)에 올랐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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