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책. 1976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호적대장은 단성이 산청군에 편입되는 시기에 지금의 단성향교로 옮겨 보관하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호적대장은 전국 군 · 현의 호구를 면 · 이별로 오가작통(五家作統)하여 차례로 각 호에 대하여 적고 있다.
식년(子, 卯, 午, 酉), 즉 3년마다 각 가호의 호주로부터 호구식(戶口式)에 따른 호구단자 2통을 작성하게 하여 관아에 제출한 것을 전 식년의 호적대장과 대조, 확인한 뒤 1통은 해당 호주에게 돌려주었는데 이를 호구단자라 하며, 나머지 1통은 관아에서 호적대장을 만드는 데 대본이 되었다.
작성된 원적(原籍) 1부는 해당 군현에서 보관하고 별도로 2부를 정서(淨書)하여 1부는 관찰사영에, 1부는 호조에 상송(上送)하였다.
이 3부는 표제에 ‘○○郡 式年 戶籍臺帳’이라 제명(題名)되어 있다. 단성현의 것도 이와 같으며 단성현에 보관되어온 원적이다.
호적대장에는 호별로 호주의 사조(四祖), 처의 사조와 부의 직역(職役)을 모두 기재하고 있으며, 선대의 것이 불명한 것은 기재하고 있지 않다.
가족과 동거인(노비) 등도 적고 있으며, 역시 직역과 연령을 적고 있다. 이를 토대로 하여 군역 · 징역 등을 민에게 부담을 가하는 자료로서 이용되었다.
그러므로 호적대장은 촌락의 구조, 호구, 신분, 혼인실태, 가족의 구성 등이 적혀 있고, 특히 말미에는 각종 군 · 현 전체의 이거호(移居戶) · 절호(絶戶) · 도망호(逃亡戶) · 호구수 · 직역별 분류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중요한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
현존하고 있는 각 지방의 호적대장 중에는 책수가 많은 것이 있기는 하나, 한 연대의 것으로 전체 군 · 현, 전체 고을대장을 갖추고 있는 것은 드물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단성의 대장은 전체 면에 관한 것이어서 사료가치가 높으며, 17∼18세기 사회의 모습을 살필 수 있어 역시 중요시된다. 편찬연대와 내용이 완전한 6책과 내용만 있는 1책은 다음과 같다.
(1) 康熙 56년(肅宗 43年 1717) 10月 丁酉式年
(2) 康熙 59년(肅宗 46年 1720) 11月 庚子式年
(3) 雍正 10年(英祖 8年 1732) 10月 壬子式年
(4) 乾隆 27年(英祖 38年 1762) 4月 壬午式年
(5) 乾隆 48年(正祖 7年 1783) 1月 癸卯式年
(6) 乾隆 51年(正祖 10年 1786) 正月 丙午式年
(7) 時代 未祥(表紙喪失) 己卯式年
이 호적대장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1980년 ≪경상도단성현호적대장≫ 상하 2책으로 영인, 출판하였다. →호적